[초등 아이와 홍콩 여행] 아편의 흉터와 차찬탱의 단맛, 그리고 흔들리는 경계 위에서
홍콩은 겹겹이 쌓인 시간의 냄새가 납니다. 좁은 골목 사이로 낡은 트램이 지나가고, 그 위로 초고층 빌딩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집니다. 이번 여행은 그 낯선 섞임의 이유를 따라가며, 현재 홍콩이 마주한 고민을 아이의 눈높이에서 질문을 던져줘보는 시간이었습니다.
1. 씁쓸한 시작: 빨간 이층 버스와 아편전쟁
홍콩의 상징인 빨간 이층 버스를 타면서 아이들이 말합니다. "진짜 영국의 흔적이 많이 보이네?" 이 도시의 시작은 사실 그리 화려하지 않았습니다. 19세기, 영국은 차(Tea) 무역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 아편이라는 검은 그림자를 중국에 드리웠고, 그 결과로 일어난 아편전쟁은 이 작은 어촌 마을을 영국의 식민지로 만들었습니다. 화려한 마천루의 뿌리가 전쟁과 아편이라는 씁쓸한 기록 위에 서 있다는 사실. 아이와 창밖을 보며, 때로는 강한 나라들의 욕심이 한 도시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어 놓기도 한다는 점을 담담히 나누었습니다.
2. 삶을 지켜낸 방식: 차찬탱의 밀크티
식민지 시절, 홍콩 서민들의 쉼터였던 ‘차찬탱’에 들렀습니다. 영국인들의 우아한 애프터눈 티를 동경하던 이들이 그들만의 방식으로 만들어낸 투박한 식당입니다.
비싼 홍차 대신 진한 차에 연유를 듬뿍 넣은 밀크티, 버터를 끼운 파인애플 번. 영국식 문화를 홍콩식으로 변주해낸 이 음식들에는 고단한 환경에 순응하기보다 그것을 자신의 것으로 흡수해버린 사람들의 생존 본능이 담겨 있습니다. 섞인다는 것은 때로 아픈 일이지만, 그 안에서 새로운 것을 빚어내는 것은 결국 사람의 몫이라는 것을 달콤한 밀크티 한 잔을 통해 느꼈습니다.
3. 반환, 그리고 갈림길에 선 오늘
1997년, 홍콩은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주인이 바뀐 집’에 비유해 설명해주었죠. 오랫동안 영국식 자본주의에 익숙해진 홍콩이 중국의 사회주의라는 새로운 질서와 만나며 겪는 진통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입니다.
번화가 곳곳에 붙은 선전 문구들과 예전보다 조금 무거워진 도시의 공기를 보며 엄마로서 고민에 빠졌습니다. 자유로운 자본주의의 활력과 엄격한 사회주의의 질서, 그 갈림길에 선 홍콩의 현재를 아이에게 어디까지 설명해야 할까. 저는 그저 지금 홍콩이 아주 긴 성장통을 겪는 중이라고, 서로 다른 두 세계가 하나가 되는 과정은 이토록 어렵고 치열한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에필로그에 더하는 단상] 영국의 '뒤늦은' 선물, 혹은 치밀한 설계
트램 창밖으로 보이는 홍콩의 거리에서 저는 묘한 이질감을 느꼈습니다. 영국은 왜 150년 동안 가만히 있다가, 반환을 고작 몇 년 앞둔 시점에서야 홍콩 사람들에게 투표권을 주고 자유의 크기를 키워주었을까?
어쩌면 영국은 알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자신들이 떠난 뒤, 자유로운 자본주의에 익숙해진 홍콩이 거대한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과 충돌하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요.
영국이 막판에 서둘러 심어놓은 '민주주의'라는 장치들은, 홍콩 사람들에게는 소중한 권리가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리 쳐둔 치밀한 그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주주야, 때로는 누군가 베푸는 호의 속에 아주 복잡한 계산이 숨어 있기도 하단다."
아이에게 이 복잡한 국제 정치의 속내를 다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홍콩이 겪고 있는 지금의 진통이 단순히 '문화적 차이'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 강대국들이 남기고 간 보이지 않는 손길들이 얽혀 있다는 사실을 엄마인 저부터 다시금 되새기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