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 아이와 영등포구 역사 여행 시리즈] 04. 양평동교회와 대한독립만세운동 : 언더우드 선교사가 심은 평등의 씨앗, 독립운동의 꽃으로 피어나다


안녕하세요! 아이의 눈높이에서 역사의 숨결을 기록하는 주주맘 입니다.

지난 시리즈에서 함께 걸었던 양화나루터를 기억하시나요?

👉 [초등 아이와 영등포구 역사 여행 시리즈] 02. 양화한강공원 최초의 K-Pop의 흔적이 이 곳에?

오늘은 그 나루터에 닻을 내린 한 이방인의 발걸음이 어떻게 우리 동네 사람들의 마음속에 '평등'과 '독립'의 씨앗을 심었는지 찾아가 보려 합니다.


1. 서학의 전래: 쇄국의 얼음을 깨고 들어온 평등의 봄볕

1) 텅 빈 조선, 사랑 대신 선택한 가시밭길

언더우드 선교사(한국명 원두우)가 조선행을 결심했을 때, 그에게는 사랑하는 약혼녀가 있었습니다. "그곳에 병원은 있나요? 무얼 먹고 사나요?"라고 묻는 약혼녀에게 그는 "내가 아는 것은 오로지 주님을 모르는 1,000만의 민중이 산다는 것뿐이오"라고 답했지요. 결국 파혼이라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그는 홀로 짐을 꾸려 은둔의 나라, 조선으로 향했습니다.

2) 양화나루터에 내린 희망의 첫발

1885년, 한강 물길을 따라 양화나루터에 내린 그는 가만히 앉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직접 배를 타고 강줄기를 누비며 소통했고, 그 발걸음이 닿은 곳마다 학교와 교회를 세웠죠. 고종 황제는 이 진심 어린 이방인에게 '원두우(元杜尤)'라는 이름을 직접 지어주며 든든한 파트너로 신뢰했습니다.

3) '나'라는 존재를 찾아준 양평동교회

당시 조선은 신분제가 무너지며 민중들이 고통받던 시기였습니다. 언더우드는 차별이 당연시되던 사회에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근대적 가치를 전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신분에 순응하며 살던 이들이 양평동교회에서 글을 배우며 "나도 역사를 만드는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우친 것은 우리 민족에게 찾아온 진정한 '봄볕'이었습니다.

🎙️ [특별 기획] 100년의 시간을 넘어, 언더우드 선교사와의 대담 (가상 인터뷰를 구상해보았습니다.)

주주맘: 선교사님, 안녕하세요! 100년 전 양화나루터에 내리셨던 그날로부터 참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오늘날의 아이들에게 선교사님이 전하고 싶었던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무엇이었나요?

언더우드: 반갑습니다. 제가 조선에 처음 왔을 때 보았던 것은 무거운 신분제의 사슬에 묶여 꿈을 잃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제가 그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당신은 하늘 아래 누구와도 비교할 수 없이 귀하고 평등한 존재"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주주맘: 그 '평등'이라는 가르침이 당시 영등포 사람들에게는 아주 낯설면서도 충격적이었을 것 같아요.

언더우드: 맞습니다. 이름도 없이 '개똥이'나 '누구네 댁'이라 불리던 이들이 양평동교회에서 글을 배우고 자기 이름을 당당히 써 내려가기 시작했지요. 그것은 단순한 배움이 아니라 '근대적 자아', 즉 "나도 내 삶의 주인"이라는 놀라운 깨달음이었습니다. 스스로를 귀하게 여기기 시작하자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지요.

주주맘: 바로 그 깨달음이 훗날 3.1운동이라는 거대한 항일 투쟁으로 이어진 건가요?

언더우드: 그렇습니다. 스스로를 '주인'으로 인식하게 된 이들에게 일제의 억압은 단순한 침략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가까스로 되찾은 나의 존엄성과 평등을 다시 짓밟는 또 다른 신분제와 같았으니까요. "내 이름의 주인이 나이듯, 내 나라의 주인도 우리여야 한다"는 확신이 그들을 거리로 이끌었습니다.

주주맘: 양평동교회 앞마당에서 다진 용기가 롯데홈쇼핑 앞 시위터의 뜨거운 함성으로 폭발한 것이군요.

언더우드: 허허, 맞습니다. 제가 심은 평등의 씨앗이 '독립'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맺은 것이지요. 롯데홈쇼핑 앞 광장에서 울려 퍼진 "대한독립만세"는 곧 "우리는 평등한 인간이며 이 나라의 주인이다!"라는 외침이었습니다. 그 함성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지요.

주주맘: 100년 뒤 영등포를 여행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언더우드: 여러분, 평등은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내 옆의 친구를 소중히 여기고, 나 스스로가 이 세상의 당당한 주인임을 잊지 않는 마음이 바로 평등의 시작입니다. 마당의 2세 느티나무가 그날의 기억을 전해주듯, 여러분도 그 용기를 꼭 이어가 주길 바랍니다.

2. 대한독립만세운동과 둥근잎느티나무: "대한독립만세!", 2세 나무가 이어가는 함성

1) 평등의 소망이 항일운동으로 이어진 이유

언더우드 선교사에게 배운 "하늘 아래 모두가 귀하다"는 가르침은 민중들에게 '나도 이 나라의 주인'이라는 자부심을 심어주었습니다. 신분의 사슬을 끊고 '주인공'으로 깨어난 이들에게 일제의 억압은 나의 존엄성을 짓밟는 또 다른 신분제와 같았기에, 평등의 확신은 곧 독립을 향한 뜨거운 의지로 피어났습니다.

2) 대를 이어 자리를 지키는 '기억의 전달자'

양평동교회 마당을 지키는 2세 둥근잎느티나무는 3.1운동을 직접 겪었던 원래 나무의 후계목입니다. 아빠 나무가 지켜봤던 100년 전의 긴박한 순간을 이 나무가 우리 아이들에게 대물림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참 뭉클합니다.

3) 거리로 터져 나온 함성, 롯데홈쇼핑 앞 시위터

교회 마당에서 의지를 다진 사람들은 드디어 거리로 나섰습니다. 양평동교회 인근 롯데홈쇼핑 입구 앞에 서면 작은 표석 하나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곳이 바로 영등포 주민들이 모여 목터져라 만세를 외쳤던 실제 시위 현장입니다. 늘 지나다니던 길이 사실은 민족의 자존심을 지켜낸 광장이었다는 사실을 아이와 함께 확인해 보세요.

❓ 주주가 묻고 엄마가 답해요: "왜 김대건 신부님은 돌아가시고, 언더우드 선교사님은 왕의 친구가 되었나요?"

주주가 얼마 전에 마카오 여행을 간 터라 이런 질문을 합니다. "엄마, 두 분 다 서양 공부를 전해주러 오셨는데 왜 김대건 신부님은 처형당하시고, 언더우드 선교사님은 고종 황제님이 이름을 지어줄 정도로 친하게 지내셨나요?"

👉[초등 아이와 마카오 여행] 마카오에서 찾은 조선의 발자취: 김대건 신부 유학지와 병인양요의 숨겨진 연결고리

그 이유는 바로 '시대의 문'이 열리기 전과 후의 차이 때문이에요.

  • 닫혀있던 문을 두드린 김대건 신부님: 신부님이 활동하시던 1840년대 조선은 외국 문물과 종교를 '위험한 것'으로 여겨 문을 꽉 잠그고 있었어요. "모든 사람은 하늘 아래 평등하다"는 외침이 당시 지배층에게는 나라를 흔드는 무서운 말로 들렸던 거죠. 그래서 신부님은 마카오에서 힘들게 공부하고 돌아오셨음에도 안타깝게 순교하셔야 했답니다. [지난 마카오 여행 때 보았던 성 안토니오 성당의 슬픈 기도가 떠오르네요.]

  • 열린 문으로 들어온 언더우드 선교사님: 40여 년이 흐른 뒤, 고종 황제는 나라를 근대화하기 위해 서양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했어요. 그때 마침 교육과 의료 기술을 가지고 온 언더우드 선교사님은 왕에게 꼭 필요한 파트너였죠. 시대가 바뀌어 '평등'과 '과학'이 나라를 살릴 희망이 된 거예요.

두 분의 운명은 달랐지만, '조선 사람들을 사랑한 마음'만큼은 똑같았답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뿌린 씨앗이 있었기에, 언더우드 선교사님이 가져온 꽃이 더 활짝 피어날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 학부모와 선생님을 위한 교육 가이드(2022 개정 교육과정 관련 성취기준)
이 탐방 코스는 초등 사회 및 도덕 교육과정의 핵심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아이와 함께 이동하며 아래의 성취기준을 떠올려 보세요.

1. 관련 성취기준

[4사03-02] 우리 지역의 역사적 인물이나 유적을 탐색하고, 지역에 대한 자부심을 갖는다. (사회)
[6사06-01] 일제의 침략에 맞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인물들의 활동과 3.1 운동의 의의를 이해한다. (사회)
[4도01-02]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태도를 바탕으로 자아존중감을 기르고, 자신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도덕 - 평등과 자아존중감 연계)

2. 핵심 역량 포인트

자기 주도성: 100년 전 이름 없던 민중들이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주체적인 삶의 자세를 배웁니다.
공동체 의식: 지역의 독립운동 시위터를 돌아보며 우리 동네에 대한 애착과 민주 시민 의식을 기릅니다.

🎁 험학습 보고서 양식 나눔

아이와 함께 양평동교회와 대한독립만세운동 시위 터에서의 시간을 기록하고 싶은 분들을 위해 제가 제작한 보고서 양식을 공유합니다.

양평동교회와 대한독립만세운동 시위터 체험학습 보고서 첫번째양평동교회와 대한독립만세운동 시위터 체험학습 보고서 두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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