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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 아이와 영등포구 역사 여행 시리즈 마지막] 10. 같은 영등포인데 왜 이질감이 들까? 대림역 주변에 숨겨진 '민족'과 '국민'의 수수께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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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녕하세요! 아이의 눈높이에서 우리 지역 공간의 숨결을 기록하는 주주맘 입니다. 영등포역의 낡은 공장지대에서 시작해 여의도의 눈부신 아파트 숲, 선유도 정수장, 그리고 밤섬의 기적까지 돌아본 영등포구 역사 여행이 어느덧 마지막 목적지에 다다랐습니다. 대망의 마무리할 마지막 장소는, 어쩌면 많은 부모님이 "어? 거기는 아이와 가기 조금 조심스러운데..." 하고 발걸음을 망설이셨을지도 모르는 곳, 바로 '대림동(대림역 주변)'입니다. 이번 여정은 평소 대림동을 종종 오가던 주주가 던진, 너무나 순수해서 오히려 가슴을 콕 찌르는 이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엄마, 여기는 분명 같은 영등포구인데 왜 이렇게 중국 같아요? 조선족이 뭐에요? 나쁜 사람이에요?" 아이의 투명한 시선이 던진 이 질문 앞에서, 저는 대림동을 바라보던 제 안의 막연한 선입견을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여러분은 아이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면 어떻게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우리의 영등포 역사 여행의 마지막 미션은, 아이의 눈에 비친 이 솔직한 의문의 실체를 파헤치고, 대림동이 가진 진짜 얼굴을 마주하는 것입니다.  1. 이질감의 뿌리: 구로공단 배후지가 이주민의 중심지가 되기까지 대림역 주변이 영등포의 다른 동네와 다르게 느껴지는 이유는, 이 땅이 살아온 '치열한 산업화의 역사'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1970~80년대 대림동은 바로 옆 구로공단(현 구로디지털단지)과 영등포 공장지대에서 일하던 시골 청년들이 모여 살던 거대한 주거 배후지였습니다. 당시 대한민국의 한강의 기적을 이끌던 수많은 젊은이가 방값이 비교적 저렴했던 대림동의 작은 벌집 방에 보금자리를 틀고 밤낮으로 땀을 흘렸지요. [초등 아이와 영등포구 역사 여행 시리즈] 01.영등포역과 공장들: '이촌향도' 꿈을 안고 모여든 사람들의 시작점 세월이 흘러 1990년대 이후, 한국의 청년들이 떠나고 비어버린 그 공장과 벌집 방 자리를, 더 나은 기회를 찾아 바다를 건너...

[초등 아이와 영등포구 역사 여행 시리즈] 09 밤섬, 폭파되어 사라진 섬의 기적이 전 세계의 보물이 되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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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이의 눈높이에서 공간의 숨결을 기록하는 주주맘 입니다. 지난 여정에서 우리는 급격한 도시화로 인해 생긴 서울의 주택 부족 문제를 해결하고자 세워진 여의도 시범아파트, 그리고 몰려든 사람들의 목마름을 해결하기 위해 세워졌던 선유도 정수장의 치열한 역사를 차례로 만나보았습니다. 이 멋진 영등포 역사 로드의 다음 코스로, 저는 여의도와 마주 보고 있는 서강대교 아래, 인간의 발길이 완전히 끊어진 채 도심 속 거대한 새들의 낙원이 된 신비로운 섬, '밤섬'을 바라보는 탐방을 제안해 드리고 싶습니다. 본격적인 탐방을 떠나기 전, 한강 변에서 아이와 함께 강 너머 밤섬을 바라보며 이런 흥미진진한 질문으로 호기심의 문을 열어보시는 건 어떨까요? "얘들아, 지금은 저기 나무만 무성하고 새들이 가득한 밤섬에 옛날에는 사람들이 배를 만들고 평화롭게 살던 정겨운 동네가 있었대. 그런데 나라에서 저 섬을 다이너마이트로 쾅! 하고 폭파해서 아예 지도에서 없애버렸단다. 사라졌던 섬이 어떻게 지금 우리 눈앞에 다시 나타나 있는 걸까?" 다이너마이트로 폭파되어 흔적도 없이 사라졌던 섬이 스스로 부활한 위대한 기적의 이야기. 이번 주말, 아이의 손을 잡고 한강의 바람을 맞으며 들려주기 딱 좋은 밤섬의 놀라운 역사 속으로 미리 함께 들어가 볼까요? 1. 1968년의 비극: 여의도를 위해 지도에서 지워진 밤섬 조선 시대부터 밤섬은 밤알을 닮아 예쁜 섬으로 불렸고, 수백 명의 주민들이 배를 만들고 약초를 캐며 평화롭게 모여 살던 정겨운 고향이었습니다. 하지만 1968년, 밤섬은 청천벽력 같은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1960년대 대한민국은 당장 배고픔을 벗어나고 서울이라는 거대한 신도시를 건설하는 것이 가장 시급했던 '산업화의 시대'였습니다. 비만 오면 물에 잠기던 황량한 여의도 모래섬을 단단하게 다지기 위해서는 엄청난 양의 돌과 흙이 필요했고, 홍수가 날 때 한강 물이 잘 흘러갈 수 있도록 물길도 넓혀야 했지요....

[초등 아이와 영등포구 역사 여행 시리즈] 08.선유도공원, 신선이 노니던 선유봉은 어디로 갔을까? 상처 입은 정수장에서 피어난 초록빛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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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아이의 눈높이에서 공간의 숨결을 기록하는 주주맘 입니다. [초등 아이와 영등포구 역사 여행 시리즈] 07. 도시화로 탄생한 아파트 문화, 그 중심에서 여의도 시범아파트를 다시 바라보다. 지난번 여의도 시범아파트 여행에서 좁은 서울 땅에 인구가 폭발하면서 만들어진 '수직 도시(아파트)'의 역사를 함께 살펴보았지요. 이번에는 양화대교 중간에 호젓하게 자리 잡은 초록빛 가득한 섬, '선유도공원'으로 떠나볼 차례입니다. 지금은 물을 사랑하는 식물들과 시민들의 부드러운 발걸음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생태 공원이지만, 이곳에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거대한 비밀이 하나 숨어 있답니다. 오늘 여행의 시작은 이 질문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얘들아, 옛날 옛적 이곳에는 신선들이 내려와 춤을 추며 놀던 아름다운 바위산, '선유봉(仙遊峰)'이 있었대. 그런데 그 멋진 봉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이렇게 납작한 섬만 남은 걸까?" 아이는 눈을 반짝이며 "누가 깎아 먹었나? 아니면 힘센 거인이 들고 가 버린 거예요?" 하고 저마다의 상상력을 발휘할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지금 평화롭게 발을 딛고 서 있는 선유도공원의 납작한 땅속에는, 부수고 깎아내서라도 더 나은 내일을 만들고자 했던 대한민국 산업화와 도시화의 치열한 흔적이 고스란히 묻혀 있습니다. 신선이 노니던 아름다운 바위산 선유봉이 왜 거대한 도심 속 섬이 되었는지, 그 흥미진진한 타임머신 여행을 지금 시작합니다! 1. 사라진 봉우리: "서울을 만들기 위해 온몸을 바치다" 조선 시대 최고의 화가 겸재 정선의 그림에도 등장할 만큼, 선유봉은 한강에서 가장 아름답기로 소문난 바위산이었습니다. 빼어난 풍경 덕분에 '신선이 노닐던 봉우리'라는 이름까지 얻었지요. 하지만 이 아름다운 바위산은 대한민국의 역동적인 변화 속에서 큰 운명의 변화를 맞이하게 됩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한강의 홍수를 막기 위해 둑을 쌓고 여의도 비행장을...